원코리아글로벌캠페인은 안창호와 같은 지도자들을 움직였던 독립운동의 정신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 1919년 3.1운동을 기념하는 많은 행사들은, 전 인류에 기여하고자 하는 계몽된 국가의 비전인 코리안 드림을 통해 각계 계층을 비롯한 세계의 한국인들을 고무시키며 불러모으고 있다.  

그러한 국가를 건설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들은 모든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도덕적이며 화합된 국민들을 필요로 한다. 원코리아글로벌캠페인은 한국의 독립 운동의 희망과 꿈을 이루고자 하며, 이에 따라 이러한 숭고한 이상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안창호와 같은 지도자들의 유산을 기린다. 다음의 이야기는 1dream1korea.com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애틀랜타 소재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국립 역사 유적지에 자리잡고 있는 국제 민권명예의 전당은 화강암 돌판에 박힌 청동 발자국으로 표시된 산책로이다. 이 산책로는 “모두를 위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희생하고 투쟁한 정의의 용사들”을 보여준다.

2012년에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캘리포니아의 한국계 미국인 공동체 지도자인 안창호를 기리기 위한 발자국이 추가되었다.

안창호의 이야기는 모든 한국인의 민권을 존중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한국인들의 계속되는 투쟁의 일환이다. 올해 한국은 1919년 3월 1일부터 시작된 독립 운동 100주년을 맞아 분단과 자유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안창호의 국제 민권 명예의 전당 발자국은 우리로 하여금 끝나지 않은 한국인들의 고통을 되돌아보게 하는 한편, “21세기 민권운동”의 시작을 촉구한다.

한국 독립의 심장부에 있는 도덕적 지도자

도산 안창호, 1910년 로스엔젤레스

안창호는 배에 가볍게 부딪치는 파도의 짠 안개를 맛 보았다. 사방으로 자유롭게 펼쳐지는 맑고 푸른 바다의 평온함은 그가 사랑하는 조국 한국이 사회적 제약과 혼란에 뒤덮여가는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수평선 너머에서 그는 푸르게 솟아오른 한 조각의 땅을 보았고, 배가 더 가까이 다가가자 산이 나타났다. 광대한 바다 한가운데 그 섬이 고립되어 있는 것 처럼, 안창호는 격변하는 사회의 한가운데 서있는 외로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앞에 있는 장엄한 산은 엄청난 힘과 함께 수면 위로 높이 솟아 있었다. 이 장면에 감동한 그는, 스스로 시대의 도전을 뛰어넘을 수 있는 훌륭한 도덕적 인격과 내적 강인함을 지닌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이 결심을 계기로 섬 산을 뜻하는 도산(島山)이라는 필명을 직접 지었다.

때는 1902년, 최종 목적지인 샌프란시스코로 향하기 전에 호놀룰루에 멈춘 배 위에서 안창호는 그의 새 신부 이혜련 옆에 섰다. 그들은 미국으로 이민 간 최초의 한국인 부부였다. 안창호는 종국에는 한국으로 돌아가 봉건 사회와 교육 제도를 개혁하고 현대화하기 위해 기독교와 미국의 교육 제도에 대해 배우고자 했다. 당시 일본은 한국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통제력을 강화하고 있었고 1910년, 한국은 일본에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다.

독립 투쟁 과정에서 도덕적 성품 배양

1915년, 하와이에서 열린 연례회의에 참가한 국민회

수십년 간의 식민 통치 기간 동안, 한국인들은 종교 및 경제 활동의 제약과 문화적 정체성 상실에 직면했고, 학교에서 한국어와 역사를 가르치는 것 조차도 점차 제한되었다. 이러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고 번영하는 독립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희망이 안창호를 포함한 많은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 불타올랐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 국민회, 홍사단 등 독립 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단체를 설립했다. 그는 미국 최초의 한인 감리교회 설립을 도왔는데, 그중 일부 신도들은 종종 얼마 안되는 임금의 절반을 독립 운동을 위해 기부했다. 그는 또한 1907년 한국으로 돌아갔을 당시, 독립 운동을 지지하는 비밀 지하 조직인 신민회를 설립했다.

안창호는 독립에 있어 당면한 목표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신생 독립 국가가 어떻게 부강해 질 수 있는지 고려할 것을 촉구했다. 자신의 질문에 대한 그 스스로의 분명한 대답은, 자국 시민들이 건전한 도덕을 갖추는 것이었다. 

흥사단 헌법에 명시되어 있듯이, 흥사단을 통해 그는 신생 독립국의 강력한 토대가 될 훌륭한 도덕적 인격을 갖춘 젊은 지도자들을 육성하고자 했다 :

“이 조직의 목적은 진리를 추구하고, 거짓보다는 행동하는데 일생을 바칠 충직하고 고결한 남성과 여성을 하나로 묶어 우리 나라의 번영하는 미래를 위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상호 협력의 덕목을 기르고, 도덕적, 신체적, 지적 훈련을 통해 건전한 인격을 개발할 것이며 훌륭하고 견고한 조직을 세울 것이다.”

안창호는 한국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한국은 도덕적으로 파산했으며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한데, 이는 시민들의 손에 달렸다고 여겼다. 그는 개개인의 인격 개선, 진리 추구의 가치 증진, 올바른 행동, 충성, 그리고 용기가 국가 개혁을 이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고 믿었다. 그가 설립한 사회 단체들은 이러한 견해들을 반영했으며 그는 많은 사람들이 조국 한국의 항구적 자유와 독립을 확보하기 위한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으로 이러한 자질을 추구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었다.

계몽된 국가에 대한 그의 유산과 꿈

안창호는 한국 독립 운동의 진정한 지도자였다. 그는 가족의 필요를 희생한 채 한국과 중국을 넘나들며 자유롭고 고결한 국가를 위해 싸웠고,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투옥되었다.

1919년 3월 1일 독립 운동으로부터 100년이 지난 후, 한국은 마치 한 세기 전에 그랬듯이 교차로에 서 있다.

안창호가 높은 이상을 가진 새로운 국가를 그리며, 그러한 국가의 조상들의 “건전한 인격”육성을 강조한 것은 그 당시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진실되게 울려 퍼진다.

한반도에 있어 중대한 시기인 지금, 한국 국민들은 현재의 분단된 조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가지고 있다. 통일된 한국이 어떠한 나라일 것인가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것은 통일을 위한 핵심적인 첫 단계가 될 것이다.